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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 편집국
  • 등록 2021-06-10 17:50:57
  • 수정 2021-06-11 10: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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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와 영원히 사는 나무가 되다.

<사진제공: 오픈씨 청표범 계정> https://opensea.io/assets/0x495f947276749ce646f68ac8c248420045cb7b5e/106001253260963141951013489511707178322148072781898643716044067116930490695681/


사람이 뼛속부터 바뀌어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적어도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 이야기 만큼은 ‘다시 태어남이 가능하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북 군산에 사는 kingbit(가명). 겉으로만 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마치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숙연해진다.


“안녕하세요! kingbit이라고 합니다!” 큰 목소리로 밝게 웃으며 아이를 안고 암병동 병실로 들어오는 그를 본 한 환우는 적어도 그순간 만큼은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냥 똑같은 환자일 뿐이었다.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때만 해도 별 의심 없이 병원을 찾은 그에게 동네 병원의 의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어진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장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중증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남은 수명은 3개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몸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무작정 울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에 대한 간절한 애착 속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 아들과 아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무조건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병실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도 엄청난 행운이 찾아 왔다. 다른 환자들은 6-7년씩 기다린다는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kingbit씨는 약 5개월 정도 지난 그해 10월 달에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조혈모세포 이식 준비가 시작됐다.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일이기 때문에 면역 반응을 최소화하려 본인의 모든 면역력을 제로로 만들고 항암제도 최고치로 들어갔다. kingbit씨는 무균실에서 무기력하게 이식만 기다렸다.


무사히 이식을 받으면 치료가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가 긴 터널의 시작이였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난 줄 알았던 이식은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가 찾아 왔다. 혈소판부족으로 혈소판수혈을 받던중 심한 거부 반응으로 급성발작이 시작되기까지 했다. 의학적으로 발작이나 경련은 몸 안의 전기 신호 전달 체계가 무너진 것으로서 심정지도 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kingbit씨는 격하게 요동치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죽는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병동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에게 매달렸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면역거부반응을 보였고 환우들 사이에서는 kingbit씨가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다 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kingbit씨는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3년 동안 거동조차 힘들었다. 자리에 누워 기저귀를 차봤고, 걷기 연습도하고,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았다.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 기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살아 있지만 송장이나 다름없었던 kingbit씨 에게 지금까지 고수하던 가치관에 회의가 생겼다. ‘나는 왜 살아 있는 거지? 더 간절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 때부터 삶과 죽음은 정성이나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막말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네가 회개를 게을리 해서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기 위하여 그런 병을 주신 것이다.” kingbit씨는 그런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신학을 전공하고 전도사로 지내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를 꿈꾸던 그였지만 누워있는 지경이 되어서야 육신을 가지고 발을 내딛는 이 땅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전까지는 살고 있어도 온전히 발을 땅에 디딘 것이 아니었어요. 종교라는 이름으로 천국이라는 죽은 뒤에 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해서 그 동안은 제 삶이 허공에 떠 있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투병 생활을 하면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이, 이 지구가 너무나 소중했어요. 성경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나오는데 제가 가장 사랑해야 될 제 이웃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kingbit씨의 삶은 그 때부터 기적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설혹 자신이 이 세상에 없더라도 꿋꿋이 잘 살아가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경제적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부를 했다. 책과 동영상들을 찾아보던 중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떠다니는 정보가 아닌 믿을만한 기관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원, KB금융연구소, 인터넷진흥청 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었다. 


한 때 크게 유행하던 싸이월드도 결국은 없어졌지만 블록체인상에 기록된 것은 컴퓨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kingbit씨는 아들이 그림그리기를 시작하자 아들의 작품들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었다. 자신은 영원할 수 없지만 자신과 아들이 함께한 흔적과 아들이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를 블록체인SNS(STEEMIT)에 남겨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NFT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클럽하우스에 드나들며 다른 NFT 작가들과 교류하다가 보다 쉽게 NFT아트를 발행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카카오톡에 ‘클하NFT'라는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고 아티스트들을 도와주다보니 사람들도 어느 새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해 현재는 700명이 넘어간다.


사실 kingbit씨의 이런 특별한 나눔 정신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암호 화폐를 공부하던 시절 그는 스팀잇이라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며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곳에서 커뮤니티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알게 되었다. (스팀잇은 사이트에 글을 쓰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스팀이라는 코인으로 지급받는 이색적인 사이트이다.) 


이 곳에서 그는 자발적으로 정보를 조건없이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언젠가는 똑같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고 한다.

갑자기 어릴 때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kingbit씨의 정신은 또 다른 현실인 디지털 세상에서 뿌리를 내려 K-NFT아트라는 눈부신 열매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들한테도. 아내한테도. K- NFT 아티스트들한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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